[27] 한중일 고전의 빛과 그늘 고두현 논설위원/한국경제/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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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의 물줄기는 2500여 년 전 공자의 유학(儒學)에서 발원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한자문화권의 인문학 교과서였다. 한중일 3국은 이 고전(古典)의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다른 근세를 경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계원필경>과 고려시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고전으로 꼽는다. 일본에서는 8세기 고사기, 일본서기, 만엽기 등을 든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사상사는 문학.역사서 보다 유학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유학 중에서도 가장 득세한 교리는 성리학이다. 12세기 남송의 주희가 집대성했다고 해서 주자학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경전 원본보다 주자의 해석을 중시했다. 주자의 교리와 다르게 해석하면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일본에서는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선보다 자유롭고 실용적으로 받아들였다.인 방향으로 전환했다.

일본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주자학적 해석을 거부하고 고전의 원래 뜻을 정하는 고문사학을 정립했다. 공자의 '인(仁)'을 '사랑의 이치이자 마음의 덕'이라고 본 주자와 달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봤다. 또 '학이'편의 '인부지이불온'을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억울해하지 않는다.'로 풀이했다.

<논어>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도 달리 해석했다. 여기서 '습'은 하얀 새의 날개짓을 뜻하므로 익히는게 아니라 실천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보다 '배우고 열심히 실천하면 즐겁지 아니한가'가 본뜻에 가깝다고 했다.

그의 학문에 탄복한 다산 정약용은 이를 자신의 저서 <논어고금주>에 인용하며 "이제 그들의 글과 학문이 우리를 훨씬 초월했으니 부끄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훗날 학자들은 공자사상의 제가와 치평 중 제가에 치중한 조선과 치평에 초점을 맞춘 일본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일본 근대화가 빨랐던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같은 고전이라도 받아들이고 활용하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일본이 새 연호 '레이와'를 자국 고전 <만엽집>에서 인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시문집 <문선>에 이미 실린 내용이라는 지적이 일본 학계에서 제기됐다. 이래저래 고전 원류의 벽을 뛰어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불후의 고전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시작'이자 '가장 새로운 원천'이라 할 만하다.

 

- 요약 및 의견

고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근대화라는 학자들의 의견이 있다. 공자사상을 해석하고 활용함에 있어 치평에 집중한 일본과 제가에 중점을 둔 대한민국의 차이가 근대화를 도입하는데 커다란 격차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이런 한 부분이 모든 결과를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조선은 성리학의 해석을 두고 노론, 소론, 동인, 서인, 북인, 남인 등으로 갈라져 당쟁이 상당히 심각했다. 심지어 임진왜란 때도 당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은 성리학을 해석함에 있어 주희의 해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자유롭고도 실용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배울 부분은 배우고 칭찬할 부분은 칭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고전을 읽으며 기존의 해석을 너무 따르기 보다는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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